시작하며
네덜란드는 자유의 나라일까, 아니면 또 다른 신분제의 형태일까.
한국 사회에서 ‘우덜란드’라는 표현은 자주 정치적인 의미로 쓰인다. 특정 계층만을 위한 사회 구조, 그리고 그 계층에게만 허용된 자유와 복지. 이런 시선으로 본다면, 유럽의 대표 복지국가인 네덜란드는 어떤 모습일까. 직접 네덜란드를 방문해 눈으로 본 이 도시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하고 모순적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1. 자유로운 도시 네덜란드, 그 안에 감춰진 조건들
자유는 누군가에겐 혜택이지만, 누군가에겐 진입장벽이다.
네덜란드는 자유로운 분위기로 유명한 나라다. 마약이 합법인 점, 성소수자를 위한 법적 보호, 자전거 중심 도시 등은 ‘진보적인 국가’라는 이미지를 만든다. 하지만 실상을 보면, 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 네덜란드 자유를 누리기 위한 조건들
- 높은 세금 납부: 네덜란드는 소득세율이 매우 높다. 중산층 이상은 연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낸다.
- 복지 시스템 의존: 국가가 보장하는 주거·의료·교육 등은 세금으로 충당된다. 세금 없이 자유는 없다.
- 자전거 중심의 이동: 차량보다 자전거가 중심인 교통체계. 익숙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편하다.
- 영어 의존도 높음: 네덜란드어 외에도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해야 진정한 시민으로서의 삶이 가능하다.
- 집값 문제: 수도 암스테르담은 주택 공급이 부족해 수상가옥에서 사는 경우도 많다. ‘낭만’보다 ‘불가피한 선택’에 가깝다.
실제로 도심을 걷다 보면, 유리창이 큰 수상가옥과 운하를 따라 배들이 주차된 풍경이 아름다워 보이지만, 이 공간들은 움직이지 않는 ‘주거지’다. 물 위에 떠 있다는 낭만 뒤에는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오랜 주택 문제, 그리고 이방인에게는 높게 쌓인 장벽이 자리하고 있다.
2. 유럽형 도시계획, 한국은 왜 따라 하려는가
도시계획, 환경, 주거. 네덜란드는 정말 선진적인 모델일까?
많은 한국 정치인들이 유럽 특히 네덜란드의 도시 시스템을 모델로 삼으려 한다. 자동차를 억제하고 대중교통, 자전거, 도보 중심의 도시계획. 낡은 주택 보존과 고층 건물 규제. 듣기엔 좋지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 한국과 다른 네덜란드 도시 환경의 특징
- 건물과 건물 사이 틈 없음: 벽을 공유한 형태의 연립 주택이 일반적이다. 공간감보다는 효율 위주다.
- 리모델링 문화: 헌 집을 부수기보다 고쳐 쓰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집 한 채를 바꾸는 데도 주변과 조율 필요.
- 차량 억제 정책: 도심 차량 진입 제한, 주차 공간 부족. 대신 자전거 인프라가 정교하게 설계되어 있다.
- 공공 주택 비율: 전체 주택의 약 30%가 공공 주택이며, 이마저도 대기자가 많아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개인적으로도 “이게 한국에 들어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던 부분이 많았다. 건물들이 서로 붙어 있어 철거나 확장이 어렵고, 자전거와 차량, 보행자가 뒤섞인 도로는 처음 보는 사람에겐 꽤 혼란스럽다.
3. 한국이 유럽식 모델을 따를 때 생기는 문제들
정치적 해석과 현실의 괴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유럽식 복지 모델을 도입해 ‘공정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자주 말한다. 특히 586세대가 주도하는 정책에서는 유럽형 계획도시, 세금 기반의 복지, 저층 고밀도 주거 등 네덜란드에서 볼 수 있는 정책 요소가 자주 등장한다.
📑 한국 사회에서 유럽형 시스템 적용 시 문제점
- 높은 세금 수용 불가: 한국은 여전히 조세저항이 큰 사회다. 복지를 위한 세금 인상은 반발을 일으킨다.
- 주택 형태의 문화적 차이: 고층 아파트가 보편화된 한국과 달리, 네덜란드식 저층 주택은 호응이 적다.
- 자전거 도입의 현실적 한계: 도로 폭, 인프라, 기후 조건이 한국과는 맞지 않는다.
- 복지의 조건화: 네덜란드는 복지 수혜자에 대한 규제와 관리가 엄격하다. 단순한 ‘무상복지’ 개념이 아니다.
- 도시밀도 차이: 서울처럼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유럽식 도시는 오히려 교통혼잡을 가중시킬 수 있다.
4. ‘우덜란드’라는 말의 함의, 신분제로의 회귀인가
복지가 모두를 위한 것 같지만, 실상은 계층을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우덜란드’는 ‘우리끼리만의 네덜란드’라는 비판적 표현이다. 자유롭고 평등해 보이는 시스템이 실제로는 소득과 지위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는 사회. 이곳에서 자유는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아버지, 유색인종에 대한 무심한 시선, 비싼 주택 시장. 모든 것이 그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직접 방문해본 경험상, 네덜란드는 자유롭지만 비싸고, 아름답지만 배타적인 면도 존재한다. 이 점은 “과연 한국이 이 모델을 그대로 따를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마치며
네덜란드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나라였지만, 한국이 따라야 할 이상형은 아니다.
유럽형 복지 시스템과 도시계획은 나름의 역사와 조건에서 탄생했다. 이를 단순히 선진국 모델이라 여기고 한국에 그대로 이식하려는 시도는 오히려 문제를 키울 수 있다. 특히 모든 것을 ‘자유’라는 단어로 포장할 경우, 실제로는 소수만 누리는 권리로 변질될 수 있다.
정치인들이 말하는 유럽 모델은 언제나 ‘예쁜 풍경’만 담긴 그림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 비용, 불편함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한국에 필요한 것은 ‘모방’이 아니라 ‘재해석’이다. 자유가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선, 그 자유를 누구에게 어떻게 나눌 것인지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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