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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부동산 브리핑

조합장을 변호사가 맡으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by 오늘의 부동산 브리핑 2026. 1. 21.

요즘 재건축이나 재개발 현장을 둘러보다 보면 분위기가 꽤 달라졌다. 예전에는 회의실만 들어가도 머리가 하얗게 센 어르신들이 도장을 들고 앉아 계셨는데, 이제는 노트북이나 태블릿을 앞에 둔 30·40대들이 조합장 자리에 앉는 경우가 늘었다. 그 변화가 반가우면서도, 솔직히 불안한 마음이 동시에 든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예전 조합장은 은퇴한 60대 중반의 분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무실에 들르며, 커피잔을 내려놓고는 “우리 세대가 이걸 마무리하고 가야지”라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사업은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분의 추진력보다 ‘관성’이 더 앞섰다. 조합원들끼리도 ‘본인 임기 동안 돈만 벌면 된다’는 불신이 쌓였고, 결국 교체 움직임이 일었다.

 

새로 뽑힌 사람은 30대 후반의 변호사였다. 처음에는 기대가 컸다. 젊고 똑똑하고, 계약서나 법적 구조를 명확히 짚어줄 줄 아는 사람이니 이제는 투명하게 일처리가 되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조합장이 변호사라는 건 ‘좋은 카드이면서도 동시에 위험한 카드’라는 걸 금방 깨달았다.

 

조합장이 변호사일 때 생기는 가장 큰 장점은 법을 아는 사람이라는 점이다

정비 사업은 계약과 분쟁의 연속이다. 추진위원회 단계부터 시공사 선정, 조합 설립 인가, 관리처분인가까지 어느 단계 하나 법적 해석이 엇갈리지 않는 순간이 없다. 그럴 때마다 외부 법률자문을 구하지 않아도 즉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건 정말 효율적이다.

 

내가 본 변호사 조합장은 실제로 서류 한 장, 문구 하나를 놓고도 꼼꼼하게 따졌다. ‘이 표현이면 조합에 불리할 수 있다’, ‘이 문항은 시공사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 같은 판단을 바로 내리니 회의가 군더더기 없이 흘러갔다. 심지어 시공사 측 변호사와의 협상에서도 기죽지 않고 조합 입장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덕분에 계약 조건 하나하나가 예전보다 훨씬 깔끔해졌다.

 

그런데 문제는, 법리적으로는 완벽하지만 ‘사람 사이의 온도’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였다. 조합은 회사가 아니다. 조합원이라는 이름 아래, 수백 명의 ‘이해관계자’가 엉켜 있는 공동체다. 여기에선 논리보다 감정이 우선할 때가 많다.

 

디지털화된 투명성, 하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그림자가 있다

변호사 조합장이 취임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이 ‘전자 투표 시스템 도입’이었다. 투표율이 높아지고 절차가 간소화됐다는 점은 확실히 좋았다. 그런데 회의 중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어머니 폰으로 투표가 돼 있던데요. 이거 저희 가족이 대신 눌렀어요.”

 

순간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실제로 고령 조합원들은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했다. 대신 자녀들이 대신 투표를 눌러주는 경우가 많았다. 겉보기에는 전자화로 투명해진 듯 보이지만, 사실상 ‘대리 결정’이 늘어난 셈이다. 결국 조합의 의사 결정이 실제 조합원 의지와 다르게 흘러가는 순간이 생긴다.

 

나도 그때부터 전자 투표에 회의적인 입장이 됐다. 물론 온라인 시스템이 빠르고 편하지만, 진짜 ‘민의’가 반영되는지는 다른 문제다. 예전처럼 불편하더라도 한날 한시에 다 모여서 직접 손을 드는 방식이 오히려 명확했다. 그 번거로움 속에만 진짜 합의가 있었다.

 

젊은 조합장의 리더십이 부딪히는 현실

30·40대 조합장은 확실히 일처리가 빠르다. 보고서도 구글 드라이브로 공유하고, 단톡방으로 회의록을 뿌린다. 하지만 그 효율성은 곧바로 ‘벽’을 만든다. 60대 이상의 조합원들은 그 문서들을 읽지도, 접근하지도 못한다. 회의가 끝나면 늘 같은 질문이 돌아온다.
“그 자료는 어디에 올라온 거야?”
“그거 카톡방에 올렸잖아요.”
“나는 그런 거 못 봐.”

 

이 간극이 점점 커진다. 결국 젊은 세대가 주도하는 조합은 ‘민주적’이라기보다 ‘소통이 단절된 효율 조직’이 되어간다. 이건 아이러니하다. 투명성과 참여를 위해 디지털을 도입했는데, 실제로는 더 많은 사람을 배제하게 된다.

 

결국 조합은 ‘사람’이 아니라 ‘돈’이 움직인다

한번은 회의 끝에 조합장이 이렇게 말했다.
“정비 사업은 두 부류가 있습니다. 돈을 많이 들여서 최대한 좋은 걸 하자는 쪽, 그리고 최소한의 돈으로 그럭저럭 살만하게 만들자는 쪽.”

 

그 말이 꽤 현실적으로 들렸다.
결국 조합장은 ‘누구의 논리에 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법적으로 옳은 길, 도덕적으로 바른 길,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길은 전혀 다르다. 변호사 조합장은 대부분 첫 번째 길을 택하지만, 현장은 세 번째 길로 움직인다.

 

나는 여전히 변호사 조합장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법을 아는 리더’가 ‘사람을 아는 리더’로 변하기란 쉽지 않다는 걸 여러 번 봤다. 결국 조합의 미래는 문서가 아니라 관계 위에 세워진다.

 

어느 날 퇴근길에 조합장에게서 문자가 왔다.
“다음 주 전자 총회 꼭 참여 부탁드립니다.”
나는 답장을 쓰다 말고 그냥 폰을 내려놨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조합이라는 건 결국 사람이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해야 돌아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합 회의가 열릴 때마다 일부러 직접 참석한다. 회의장 공기 속에 섞여야만 느껴지는 온도가 있다. 그건 어느 전자 화면으로도 대체되지 않는다.

 

※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일반적인 생활정보를 공유하는 콘텐츠로, 전문적인 법률 자문이나 조합 운영 지침을 대체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