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가 빵이라면 좋겠다고 했던 어느 장관의 말이 떠오른 건, 강화도 바람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천 강화군 강화읍의 한적한 길을 따라가다 보면 눈에 띄는 회색빛 단지가 있다. 멀리서 보면 여느 신축 연립주택과 다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이게 그거구나’ 싶은 순간이 온다. 바로 모듈러 주택, 공장에서 만들어 트럭에 실어 온 주택을 현장에서 레고처럼 쌓아 만든 아파트였다.
처음엔 반신반의했다. ‘집을 찍어낸다’는 말이 과장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에 서 보니, 그 말이 전혀 허황되지 않았다. 관리사무소 앞에 서 있던 시공사 관계자는 “이 단지는 공장에서 완성된 모듈 160여 개를 조립해 만든 단지”라고 했다. 실제로 공사 기간은 2년이 조금 안 걸렸지만, 그중 구조물을 쌓는 데 걸린 시간은 두 달 남짓이었다.
빌라 같지만, 구조는 확실히 아파트였다
건물은 4층 규모였고, 3개 동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다. 지상주차형 구조라 지하 주차장은 없었다. 겉모습만 보면 연립주택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가까이서 보면 각 세대가 하나의 ‘모듈’이라는 게 분명히 느껴진다. 콘크리트로 마감된 외벽 틈새마다 미묘한 이음선이 보였다. 그게 모듈과 모듈이 맞닿는 접합부였다.
안으로 들어서자 새집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전용면적 24㎡, 공급면적으로는 약 10평 남짓 되는 세대였다. 내부는 심플했다. 작은 주방, 화장실, 그리고 방 하나. 모든 설비는 공장에서 이미 설치된 채로 운송되어 왔다고 했다. 벽과 천장은 현장에서 미장한 흔적이 거의 없었고, 배선이나 배관도 모듈 내부에 깔끔하게 매립돼 있었다.
관리소 관계자에게 물으니 “이 단지는 LH에서 발주한 임대형 단지라 자재가 고급형은 아니지만, 기본 구조는 일반 아파트와 다르지 않다”고 했다. 실제로 세대 내부에서 느껴지는 단열 성능이나 소음 차단은 의외로 괜찮았다.
살고 있는 주민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단지를 돌다가 우연히 만난 노인회장님께 물었다.
“살아보시니 어떤가요?”
그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처음엔 컨테이너인 줄 알았어요. 트럭으로 하나씩 옮겨오길래. 근데 막상 살아보니까 춥지도 않고, 조용해요.”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 가지가 분명해졌다. ‘조립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인식은 현실과는 다르다는 것. 콘크리트 기초 위에 철골과 내화 패널을 조립해 만든 구조라 내구성도 충분했다. 실제로 이 단지를 시공한 관계자는 “현재 국내에서 13층까지 모듈러로 지어진 사례가 있고, 올해는 14층짜리 아파트가 추가로 들어선다”고 했다. 이미 기술적 한계는 생각보다 훨씬 멀리 가 있었다.
‘빵처럼 찍어낸다’는 말의 진짜 의미
건축에서 가장 큰 비용은 시간이다. 터파기, 기초, 골조, 내장, 설비까지 이어지는 긴 공정을 압축할 수 있다면 비용 절감은 물론 공급 속도도 달라진다. 모듈러 방식은 공장에서 80% 이상을 완성해 오기 때문에 현장에서는 조립과 연결 작업만 하면 된다.
시공사는 “일반 RC 공법 대비 약 30% 공기를 단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층수가 높아질수록 반복 구조가 많아 효율이 더 높아진다고 했다. 물론 단가가 약 15% 정도 더 비싸다는 한계가 있지만,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면 그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 것이다.
지금은 LH, SH 등 공공부문 위주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지만, 민간 건설사들도 기술 검증 단계에 들어섰다고 한다. 이미 용인, 오산 등에서는 10층 이상 모듈러 아파트가 설계 중이다.
나는 이곳에서 ‘주택의 미래’를 조금 미리 본 기분이었다
집 안을 둘러보다 문득 생각했다. 이게 서울 도심에 들어선다면 어떨까? 청년과 신혼부부에게 공급된다면? 두 달 만에 완공되는 아파트가 도심 곳곳에 들어선다면, 지금의 공급 속도 논란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물론 아직 갈 길은 멀다. 내화 기준, 구조 규정, 원가 기준 등 제도적 기반이 완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규모의 경제가 형성돼야 한다. 하지만 눈앞에서 본 이 단지는 그 시작점으로 충분히 인상적이었다.
밖으로 나오니 강화도의 겨울 바람이 제법 차가웠다. LH 로고가 새겨진 입간판 옆에 ‘강화 신문2단지’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이름은 평범했지만, 안에는 낯선 미래가 자리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 차 안에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아파트가 빵이면 좋겠다’던 말이 조롱이 아니라, 현실이 되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고.
빵처럼 찍어낸다는 말이 결국 ‘누구나 집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을 향한 또 하나의 방법이라면, 그건 비난받을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첫 단지를 강화도에서 직접 봤다.
두 달 만에 쌓인 아파트였지만, 그 안엔 꽤 단단한 삶의 온도가 있었다.
'오늘의 부동산 브리핑'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전세금 신탁제, 임대인에게 의무화될까? 시장이 걱정하는 이유 (1) | 2026.01.22 |
|---|---|
| 조합장을 변호사가 맡으면 벌어지는 일들에 대하여 (0) | 2026.01.21 |
| 서울 집값 흐름의 마지막 퍼즐, 노원구가 움직인다 (2) | 2026.01.19 |
| 숫자로 본 강남 재건축의 현실… 평균 15년이 넘게 걸린 이유 (0) | 2026.01.18 |
| 115층의 꿈에서 49층 현실로, 현대차 GBC가 겪은 12년의 변곡점 (1) | 2026.01.17 |